PLI 칼럼

<PLI 칼럼> 정치의 본질(3) – 우월한 이념, 원칙, 가치가 정치적 승리를 결정짓지 않는다

엘정책연구원에서 기독교적이고, 자유민주적, 그리고 공화주의적이며, 올바른 보수 우파의 가치와 원칙을 가진 차세대 정치 리더, 시민운동가, 학생운동가, 기자, 공무원 등을 양성하기 위한 PLI(Political Leadership Institute)를 시작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PLI가 설립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격적인 PLI의 시작에 앞서, 일련의 연재 칼럼을 통해 한국 사회에 PLI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필자주)

배리 골드워터의 대선 참패 속에 새롭게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바로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레이건은 골드워터를 위한 지지연설을 하면서 정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레이건은 골드워터를 자신의 정치적 스승으로 여겼고, 골드워터의 선거운동을 통해 유명세를 얻어 주목 받는 ‘떠오르는 새로운 보수의 스타’가 됐다. 혹자는 레이건을 예수라고 한다면 골드워터는 예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과 같다고 표현한다.

레이건은 당시 캘리포니아주의 골드워터 선거본부 공동대표를 맡았는데, 주에서 100회 이상 지원 유세를 할 정도로 ‘골드워터 대통령 만들기’에 열정적이었다. 그는 특히 지지연설에서 뛰어난 연설 실력을 선보여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미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 중 하나로 꼽히는 <선택의 시간(A time for choosing)>이란 제목의 연설은 전국적으로 방송되면서 레이건을 ‘전국구 정치인’, ‘전국구 보수주의자’로 만들었다. 이 연설은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이 아니라 골드워터를 대통령으로 뽑아달라는 지지연설이었지만, 레이건의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내면에 보수의 이념, 원칙과 가치가 오래 전부터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연설의 클라이막스 부분을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평화와 전쟁 중에서 선택하라면 답은 명확합니다. 그러나 평화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오로지 하나인데, 바로 항복 뿐입니다. 역사는 유화정책이 더 위험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평화냐 전쟁이냐의 선택이란 없습니다. 오직 ‘싸울 것이냐 항복할 것이냐’의 선택만 있을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계속 적(소련)의 요구를 수용해 물러서다 보면, 결국 마지막 요구, 최후통첩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자발적 항복. 우리 가운데 일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를 구걸하자거나,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공산주의자가 되는 게 낫다고 합니다. 어느 방송인은 ‘저항하다 죽느니 항복해 무릎 꿇고 살겠다’고 말한 것을 소련 지도부는 알고 있습니다. 삶이 그렇게 귀하고 평화가 그렇게 달콤한 것임을 알지만 쇠사슬과 노예살이를 대가로 얻어져야 할 정도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계속 바로(파라오)의 노예로 살아가라고 말했어야 합니까? 콩코드 다리에서 우리의 애국자들은 총을 내려놓고 세계를 울린 발포를 거부했어야 합니까? 역사의 순교자들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치의 진군을 막아내기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의 명예로운 전사자들은 헛되게 죽은 게 아닙니다. 평화를 향한 길은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적에게 ‘용납할 수 없는, 넘어선 안되는 선이 있다’고 말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윈스턴 처칠은 인간의 숙명은 물질적으로 계량화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과 나는 그 숙명(공산주의와의 싸움)에 맞닥뜨렸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지구상에서 인류의 가장 소중한 최후 희망을 보존할 것인지, 혹은 수 천년의 암흑의 세계로 마지막 걸음을 내딛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골드워터와 레이건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둘이 가지고 있던 보수 자유 이념과 가치, 원칙은 거의 동일했지만, 대선에서 거둔 결과는 완전히 상반되었기 때문이다. 레이건은 골드워터와 달리 1980년 대선에서 현직인 지미 카터 대통령을 상대로 50개 주 중 무려 44개 주에서 승리하며 압승했다. 특히 재선에 도전한 1984년 대선에서는 상대인 민주당의 월터 먼데일을 상대로 무려 49개 주에서 이기는 전례 없는 승리를 거두었다. 승리하지 못한 곳은 먼데일의 고향인 미네소타주(그런데 불과 4천 표, 0.18% 차였다)와 골수 민주당 지지 지역인 워싱턴D.C. 단 두 곳 밖에 없었고, 선거인단 수로는 무려 525 대 13였다. 미국 정치사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결과였다.

1편에서도 보았지만, 골드워터가 외친 것은 ‘반공산주의(반공)’, ‘강한 국방’, ‘작은 정부(제한 정부)’, ‘자유 기업’, ‘개인의 자유 신장’, ‘기독교적, 도덕적, 전통적 가치와 원칙의 회복’ 등이었고, 레이건도 판박이처럼 골드워터와 거의 똑같은 가치와 원칙을 내세웠다. 레이건은 미국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 이후 계속해서 거대 정부를 지향하면서 기업과 개인의 자유를 크게 축소시켰고, 또 전 세계적으로 공산주의가 확산되는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 경제를 살기기 위해 정부의 규모를 줄이고 세금도 낮추겠다고 약속했고, 공산주의와의 싸움이 시대적 ‘숙명’이라고까지 하면서 반드시 공산주의를,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을 해체시키겠다고 천명했다. 또한 그는 미국의 전통적 기독교 가치도 복원시키려 했다. 급속도로 타락해가던 미국 사회를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재건하려 한 것이다.

두 사람의 정치 철학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골드워터는 대통령 선거에서 참패하고 레이건은 압승을 거두었다. 무엇이 이들의 차이를 만들었는가? 보수 자유 우파의 정치적 승리를 원하는 이들은, 그래서 무너져가고 있는 한국을 바로 세우기 원하는 자들은 이 부분을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보수 정치 리더 교육 전문 기관인 리더십 인스티튜트(LI)의 설립자이자 골드워터의 아이들 중 한 명이었던 모턴 블랙웰은 이에 대해 ‘조직’과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는 보수 자유 우파들에게 승리하는 정치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헌신했다. 수적으로도 많고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조직’, 그리고 대중을 설득해서 자신의 지지자로 만들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그것이 바로 정치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골드워터의 패배가 좌파 이념과 정책들을 퍼트리는 사실상 선전 선동 기관의 역할을 하는 좌파 재단, 좌파 언론, 좌파 문화계, 좌파 헐리우드 영화산업계, 좌파 출판사, 아이비리그와 UC버클리를 위시한 좌편향 대학 등 소위 “좌파 기득권 세력(Liberal Establishment)”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 마디로 조직의 열세였다. 좌파 인사들과 조직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또 보수 자유 우파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뉴딜 정책 이후 당연하게 되어버린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큰 정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 시위와 평화 운동, 히피 운동, 인권 운동, 노동 운동 등으로 보수 자유 우파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오늘날 한국의 좌파처럼, 골드워터 당시 미국의 좌파도 언론과 대학, 출판, 연예 문화계 등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수 자유 우파의 목소리를 내줄 매체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좌편향 언론들이 득세하고 있지만, 블랙웰 LI 대표는 소셜 미디어 등을 활용할 수 있고 폭스 뉴스 같은 보수 우파 언론이 있는 지금은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말할 정도로 당시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런데 언론계는 물론 교육계와 문화계도, 시민단체도, 캠퍼스 운동에서도 좌파들이 기득권으로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골드워터는 이렇게 기본적으로 조직에 있어서 좌파에 비해 열세에 있었는데, 여기에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중도 온건 보수인 록펠러와 갈등을 빚으면서 좌파들보다 자신들의 진영 안에서 더 철천지 원수를 만들어냈다. 그러니 좌파 진영과 싸워서 이긴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좌파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비관주의와 절망감에, 좌파와 정면대결하고 싸우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거대 세력이 된 좌파 세력에 대해 배후를 조사하는, 그들의 실체를 밝히려는 보수 우파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음모론이 활개를 쳤다. 1960년대 보수주의자들은 “어느 그룹에 어떤 회원이 있는가? 공개 보고서에 누가 사인을 했고 누구와 했는가? 같은 행사들에 자주 참석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같은 질문을 하면서 좌파 조직들 간의 연결을 문서화하는데 엄청난 시간을 들였다. 그리고 소련 공산당, 미국외교협회, 빌더버그, 교황, 유대인, 프리메이슨, 록펠러 가문, 미국 노조(AFL-CIO), 미국·유럽·일본 중심의 삼각위원회, 그리고 바바리안 일루미나티 등이 음모론의 주인공이 됐다. 블랙웰 LI 대표는 음모론을 연구할 시간에 좌파와 맞서 싸울 보수 조직들을 만들 생각을 하라고 권면한다. 음모론은 입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음모론을 입증한다고 그것으로 정치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보수 자유 우파는 절대 승리할 수 없다는 음모론과 달리, 현실에서는 레이건 혁명이 일어났고 공화당은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음모론은 보수 자유 우파 운동에 건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조직에 앞서지 못하면, 세력을 키우지 못하면, 다수결인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결코 정치적으로 승리할 수 없다. 따라서 조직의 수를 늘려야 한다. 사회 전방위적으로 조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조직은 명목상의 조직이 아니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효과적인 조직이어야 한다. 조직에서 지면 정치에서 승리할 수 없다. 대선에서 패배한 골드워터의 아이들은 이 사실을 깨달았고, 수많은 보수 우파 조직들을 만들었다. 그것이 결국 레이건의 승리를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골드워터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에도 문제가 많았다. 골드워터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매력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연설은 매우 지루한 편이었고, 대중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가지도 못했다. 미디어 프렌들리하지도 않았다. 골드워터는 자신의 이러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희석시키려 의도적으로 연설에 농담 등을 넣고 익살스런 TV 광고도 만들었지만, 그것들이 진정성 있게 전해지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가지고 있는 좋은 메시지를, 좋은 이념과 가치와 원칙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좋은 물건을 가지고서도 세일즈 능력이 좋지 못해서 팔지 못하는 세일즈맨과 같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로 인해 그가 가진 물건이, 그가 가진 보수 자유 우파의 이념과 가치와 원칙이 모독을 당하는 상황까지 됐다.

골드워터는 또 즉흥적으로 또는 자신을 지지하는 군중들 앞에서 단도직입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해 굳이 일으키지 않아도 될 수많은 논란을 만들어냈다. 골드워터의 한 보좌관이 기자들에게 “골드워터가 말하는 것을 쓰지 말고 그가 뜻하는 것을 써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본심과 달리 그의 발언은 지나치게 극단적, 극우적으로 비쳐졌고, 극우, 인종차별주의자, 전쟁광, Mr. 핵무기, 정신병자 등 온갖 언론의 왜곡보도에도 시달려야 했다. “가끔 저는 동부 해안가(전통적 민주당 지지 지역)을 오려내 바다에 가라앉힐 수 있다면 미국이 좀 더 부유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발언은 변명할 여지가 없이 최악의 발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이미지가 되어 버렸다. 골드워터는 결국 좌파들의, 존슨 진영이 친 프레임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존슨 진영도 골드워터의 이슈나 정책에 대해 공격하기보다는 골드워터라는 후보 자체를 공격하는 데 집중했고, 즉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했고, 그 과정에서 이슈나 정책은 완전히 실종됐다. 골드워터의 좋은 이념과 원칙, 가치는 제대로 전달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존슨 진영은 특히 TV 광고를 적극 활용했는데, 이 광고 속에서 골드워터는 인종차별주의자에 사회적 약자 보호에 관심이 없고 인류를 공멸로 이끌 핵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냉혈한, 전쟁광, 정신병자, 미치광이였다. 특히 존슨 진영은 핵폭탄 투하를 담은 ‘데이지 TV 광고’로 골드워터에게 치명타를 날렸다. 골드워터는 이 광고 이후 훼손된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하고자 노력했고, 자신은 정직하고 도덕적인 후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것은 오히려 상대가 쳐 둔 올가미에 더 걸려드는 형국이었다. 골드워터가 싫어진 사람들은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는 관심도 없었고 듣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반면 레이건은 ‘위대한 소통가’로 불리만큼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었다. ‘보수주의 정신적 지주’였던 윌리엄 버클리 역시 날카로운 필력을 자랑하면서도 다른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풍자와 유머, 균형감을 유지함으로써 지식인층과 젊은이들에게 어필했던 소통의 달인이었다.

골드워터는 아울러 성격이 직선적이고 전혀 타협할 줄 몰라서 포용성과 관용이 없었고, 승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할 사람들마저도 적으로 만들고 완전히 등을 돌렸다. 공화당 내 중도 온건파를 적으로 만든 것은 사실상 승리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반해 레이건은 골드워터만큼 자신의 보수 자유 대의에 양보가 없었지만 “너의 동지 공화당원을 욕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당내 분열을 막기 위해 힘썼다. 그래서 미국 보수 우파 운동에서는 정책, 이슈 연대를 강조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위대한 엘리트가, 유능한 독재자가 다스리는 체제가 아니라 다수의 결정을 따르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맞도 옳고 정의롭다는 생각으로는 정치적으로 승리할 수 없다. 그들은 조직을 만들고 세력을 키우고,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해서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정책과 이슈에 따라 연대할 수 있는 유연성과 개방성, 포용성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같은 보수 자유 이념, 가치, 원칙을 가지고서도 대선에서 참패한 골드워터와 압승을 거둔 레이건의 차이였다.

노승현 PLI 사무국장

2019년 3월 7일
엘 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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